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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까운 곳에 있지만 가끔 식당을 방문한 기억 뿐이었던 남한산성을 회사 추계야유회를 통해 처음으로 성벽따라 걷기를 하였다. 모처럼 역사의 현장을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. 2011-10-08
# 장경사 암문 위에서, 장경사는 조선 인조 때 승려들을 징집하여 남한산성을 축성하도록 하고 그 후에는 승군을 주둔시키지 위해 건립하였다는 절이다.
# 동문(좌익문), 지금 남한산성 성터 곳곳에서 보수공사가 한창이다. 시멘트로 보수되는 성벽이 왠지 안스럽다. 시간이 걸리고 비용이 들어도 좀 더 예전 방법을 사용하면 안되었을지 아쉽다. 남한산성은 인조 2년(1624년) 공사를 시작하여 2년 만에 완공하고 완공 한지 10년이 지나 병자호란이 일어난다.
# 남문(지화문), 남한산성의 4대문 중 유일하게 현판이 남아있는 문이란다. 1636년 12월 14일 청 태종의 10만 대군을 침입을 피해 강화도로 가던 발길을 돌려 인조의 피난 행렬이 이 문을 지나 남한산성으로 들어와 47일간의 짧은 항전을 시작했다.
# 남문에서 수어장대로 가는 길로 영춘정까지의 오르막 성벽이다. 남한산성은 이 길의 끝 청량산(497.9m) 을 중심으로 연주봉, 망월봉, 벌봉 등 해발 500m 내외의 봉우리를 연결해 쌓은 성벽이다. 본성 9.05km, 옹성 2,71km를 합해 11.76km의 성곽이 둘러쌓인 2.3㎢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
# 수어장대, 지휘와 관측을 위한 군사적인 목적으로 지은 누각으로 남한산성 내 5개의 장대 중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건물이다. 영조 27년 누각을 개축하며 2층 안쪽에 무망루라는 편액을 걸었다고 한다. 무망루는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갔다온 효종의 북진정책 의지가 담긴 뜻이라고 한다.
# 회사 행사로 수어장대에서 종로로 내려와서 서문(우익문)을 가보지 못했다. 산성의 정문인 남문(지화문)을 통해 남한산성에 들어왔던 인조는 47일째 항복을 위해 삼전도로 향하기 위해 그 서문을 나섰다고 한다. 1637년 정월 그믐 인조는 청 태종을 향해 세번 절하고 아홉번 이마를 찧어 어깨를 피로 적시는 항복례를 해야했다. 이런 웅장한 산성을 축성하고도 그런 치욕을 당했다. 역시 외교는 국방력에 기반이 있어야 한다. () 2011-10-08
# 요즘 크게 흥행하는 영화 '최종병기 활'의 역사무대로 치욕스러운 역사의 현장이지만 서울 근교에 이런 탐방로로 구성된 산행공간이 있다는게 좋다. 이곳은 북문(전승문)이다.
# 장경사 암문 위에서, 장경사는 조선 인조 때 승려들을 징집하여 남한산성을 축성하도록 하고 그 후에는 승군을 주둔시키지 위해 건립하였다는 절이다.
# 동문(좌익문), 지금 남한산성 성터 곳곳에서 보수공사가 한창이다. 시멘트로 보수되는 성벽이 왠지 안스럽다. 시간이 걸리고 비용이 들어도 좀 더 예전 방법을 사용하면 안되었을지 아쉽다. 남한산성은 인조 2년(1624년) 공사를 시작하여 2년 만에 완공하고 완공 한지 10년이 지나 병자호란이 일어난다.
# 남문(지화문), 남한산성의 4대문 중 유일하게 현판이 남아있는 문이란다. 1636년 12월 14일 청 태종의 10만 대군을 침입을 피해 강화도로 가던 발길을 돌려 인조의 피난 행렬이 이 문을 지나 남한산성으로 들어와 47일간의 짧은 항전을 시작했다.
# 남문에서 수어장대로 가는 길로 영춘정까지의 오르막 성벽이다. 남한산성은 이 길의 끝 청량산(497.9m) 을 중심으로 연주봉, 망월봉, 벌봉 등 해발 500m 내외의 봉우리를 연결해 쌓은 성벽이다. 본성 9.05km, 옹성 2,71km를 합해 11.76km의 성곽이 둘러쌓인 2.3㎢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
# 수어장대, 지휘와 관측을 위한 군사적인 목적으로 지은 누각으로 남한산성 내 5개의 장대 중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건물이다. 영조 27년 누각을 개축하며 2층 안쪽에 무망루라는 편액을 걸었다고 한다. 무망루는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갔다온 효종의 북진정책 의지가 담긴 뜻이라고 한다.
# 회사 행사로 수어장대에서 종로로 내려와서 서문(우익문)을 가보지 못했다. 산성의 정문인 남문(지화문)을 통해 남한산성에 들어왔던 인조는 47일째 항복을 위해 삼전도로 향하기 위해 그 서문을 나섰다고 한다. 1637년 정월 그믐 인조는 청 태종을 향해 세번 절하고 아홉번 이마를 찧어 어깨를 피로 적시는 항복례를 해야했다. 이런 웅장한 산성을 축성하고도 그런 치욕을 당했다. 역시 외교는 국방력에 기반이 있어야 한다. () 2011-10-08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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